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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회봉사명령에는 아무런 한계가 없는가 - 한 기업가에 대한 법원의 창의적 판결에 관한 소고
분류 공판송무 > 공판
중요키워드 사회봉사명령 한계 죄형법정주의
등록 일자 2007년 09월 11일
출처 검찰청

본문내용

대구지검 공판부 예세민 검사입니다.


최근 한 기업가의 개인비리 사건에서 서울고법의 한 재판부가 준법경영에 관한 강의 및 일간지 기고를 할 것, 1년에 1,200억원씩 7년간 8,400억원을 공익사업에 기부하도록 하는 매우 창의적인 내용의 사회봉사명령을 선고하였다는 보도를 접하고, 고개를 갸우뚱한 법조인과 시민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이번 판결을 선의로 해석한다면, 그만한 재력이 있는 피고인이라면 그 정도의 기부를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만한 경륜을 가진 피고인이라면 그 정도의 강의와 기고를 할 수 있을 것이므로, 그러한 방법으로 사회를 위하여 공헌하도록 하는 것도 충분히 고려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법률가인 우리는 어떠한 권리나 권한을 논할 때, 항상 그 한계를 점검하여야 합니다. 한계가 없는 권한은 무소불위의 권한이며, 그것은 그 권한을 행사하는 자의 의도가 아무리 선할 지라도 결국 시민의 기본적 인권을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사회봉사명령은 헌법상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할 수 없습니다.


이번 판결은 피고인에게 전경련 회원들을 상대로 준법경영에 관한 강의를 하라고 명령하였다고 합니다. 피고인은 그 사건의 공소사실에 대하여 상당부분 무죄를 주장하여 왔다고 하는데, 그 사건의 유죄판결 취지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는 피고인으로 하여금 전경련 회원들을 상대로 “나와 같은 잘못된 행동을 하지 말고, 준법경영을 하라”라는 내용의 강의와 기고를 하라고 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또한, 피고인이 비록 법률상으로는 무죄주장을 하였지만 자신이 이번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켜 재판을 받고 유죄판결까지 받은 것에 대하여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이러한 피고인에게 동료 및 후배 기업가들 앞에서 자신의 유죄판결과 관련된 준법경영을 주제로 강연하게 하고, 일반인들이 읽는 일간지에 기고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표현하거나 표현하지 않을 것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국가권력의 간섭이나 방해를 받지 아니할 자유(소극적 의사표현의 자유)와 충돌됩니다. 


언론에서도 “정몽구 현대ㆍ기아차그룹 회장이 재판부의 사회봉사명령 실행을 놓고 당혹감에 빠졌다. 사회봉사명령에 대한 여론 눈치를 살피면서 재판부 의도를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매일경제신문 2007. 9. 8.자 “정회장 기고횟수, 강연내용 고심”)라고 피고인이 처한 당혹한 입장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사회봉사명령이 허용된다면, 앞으로 피고인들은 사법기관에 의하여 자신의 양심에 반하거나 수치심을 느끼는 어떠한 행위를 강요당하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지위에 처하게 되며, 이는 법적안정성 및 판결결과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심각하게 저해할 것입니다.


예컨대, 주취중의 과오로 음주운전이나 폭력행위 등 위법행위를 한 사회지도층 인사나 유명 연예인은 자신이 소속한 회사나 단체 직원들 또는 일반인들을 상대로, “저의 부끄러운 행동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서 여러분들은 그런 행동을 하지 마시고 법을 준수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강연을 낯을 붉히면서 하여야 될 것이며, 만약 그런 강연을 하지 않으면 구속수감될 것입니다. 수뢰혐의를 전면 부인하면서 무죄를 주장했던 공무원(법원의 유죄판결은 완전무결하지 아니하므로, 실제로 아무런 죄가 없는 억울한 공무원일 수도 있음)도 법원이 명령하면 동료 공무원들 앞에서 ‘부정부패 근절방안’이라는 주제로 고개를 떨구며 강연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판사가 ‘사회봉사’ 또는 ‘사회공헌’에 해당된다고 판단하는 모든 형태의 작위가 피고인에게 의무로 부과될 수 있다면, ‘사회봉사명령’의 명분 하에 전지전능하고 무소불위한 사법부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우리 헌법과 법률이 언제 이러한 권한을 사법부에게 부여하였습니까. 


우리 헌법재판소는 양심에 반하는 ‘작위의무로부터의 해방’을 긍정하는 바탕 위에서, 기사에 의한 명예훼손의 경우 법원이 민사판결로써 사죄광고를 명령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결정하였는바(헌재결 89헌마 160), 하물며 위와 같은 강연과 기고를 집행유예 취소라는 강력한 형사적 제재수단을 통하여 강제하는 것은 명백한 헌법위반입니다. 

둘째,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사회봉사명령은 기존의 정립된 형벌체계를 교란시켜서는 안됩니다.


우리 형법상 형벌은 생명형, 자유형, 재산형, 명예형이 있습니다. 사회봉사명령의 내용을 교도소 내에서의 노역을 하는 것으로 정할 수 있을까요. 그러한 노역도 넓은 의미에서는 사회를 위해서 봉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지만, 교도소 내에서의 노역은 곧 징역형을 의미하는데 이를 판사가 형벌의 형태가 아닌 사회봉사라는 형태로 부과할 수 있다면, 형벌과 사회봉사의 벽은 허물어지고 죄형법정주의는 유명무실하게 될 것입니다.


사회봉사명령의 내용을 교도소 내에서의 노역으로 정하는 것이 징역형 제도와 양립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내용을 재산을 납부하는 것으로 정하는 것은 벌금형 제도와 조화될 수 없습니다.


1년에 1,200억원, 7년 동안 8,400억원의 돈을 벌금형으로 선고하는 것은 우리 형법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큰 금액을 재판부가 지정하는 특정용도로 납부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사회보사명령이라는 제도에 의하여 허용된다면 벌금형의 상한을 정해놓은 우리 형법의 벌칙조항은 일거에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형태의 사회봉사명령이 허용된다면, 예컨대 벌금 1,000만원이 상한인 범죄를 저지른 기업가도 법정태도가 매우 불량하여 재판부의 미움을 산다면, 10억원을 공익법인에 기부하라는 사회봉사명령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며, 만약 그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구속수감될 것이므로 그 기업인으로서는 인신구속을 감내하지 못하겠다면 부득불 10억원을 기부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봉사명령 제도하에서 벌금 1,000만원을 상한으로 정해놓은 형벌규정은 사문화되고 맙니다.   


요약하자면, 사회봉사명령은 최소한 (1) 헌법상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하지 말라는 헌법 원칙, (2) 형법상의 형벌체계를 교란시키지 말라는 죄형법정주의의 원칙 등 두 가지의 한계를 넘어서는 안된다고 해석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 서울고법의 판결은 위 두 가지 한계를 모두 현저히 일탈하였습니다 .


이번 사건의 기업가에게는 그 사회봉사명령의 내용이 적절할 수도 있고, 그 기업가도 실형을 면하였다는 점에 만족하고 그 명령을 흔쾌히 수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특별한 하나의 사건을 타협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 형사사법체계 전체가 무원칙하게 후퇴하여서는 안될 것입니다. 피고인의 자발적 의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형사처벌의 위협 하에 특정한 주제의 강연과 기고를 하도록 강요하는 일, 법률에 의하여 전혀 규정되지 않은 수천억원대의 재산적 손해를 형사처벌의 위협 하에 강제하는 일은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는 헌법정신 및 죄형법정주의라는 근대형법의 대원칙을 소중히 여기는 문명국가 대한민국에서 결코 용인되어서는 안됩니다. 제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우리가 알고 있는 문명국가 중 이러한 위험한 제도를 용인하는 국가가 어디에 있습니까.


저는 이번 사건의 기업가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잘못을 범하였는지, 공소사실이 유죄인지 무죄인지, 유죄가 인정된다면 실형과 집행유예 중 어느 것이 합당한지 등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다만, 이번 사건을 통하여 ‘구금형의 폐해를 방지하고 범죄인의 사회복귀를 촉진하기 위한 사회내처우의 한 방안’으로 도입된 사회봉사명령이라는 좋은 제도가 법원에 의하여 이렇게 자의적이고 무제한적으로 운용될 수 있게 된다는 점에 대하여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기에, 국민들의 위임을 받아 법원에 대하여 법령의 정당한 적용을 청구(검찰청법 제4조)하여야 하는 검사로서는 이러한 법원의 권한남용에 대하여 마땅히 ‘아니오’라고 이의를 제기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검사는 피고인을 위한 상소를 할 수 있습니다만, 우리는 그동안 공판과정에서 공소유지라는 당사자성에 함몰되어 ‘피고인을 위한 상소’에 인색하여 왔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번 사건에서 검찰이 피고인에 대하여 선고된 사회봉사명령 판결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여 양심 및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수천억원대의 재산상 손해를 부담케 하는 등 피고인에게 불리한 판결임을 이유로 ‘피고인을 위한 상소’를 제기하는 것은, 일방 당사자가 아닌 공익의 대표자로서 법원에 대하여 법령의 정당한 적용을 청구하는 검사의 진정한 역할을 국민들에게 뚜렷이 보여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적법타당한 논리를 갖추어 이번 판결의 위법성을 적절히 지적한다면, 합리적인 판단력, 철저한 인권의식, 풍부한 법률지식과 식견을 갖추신 상고심에서 이번 판결이 파기될 가능성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번 판결이 파기된 후, 우리나라의 대표기업가인 피고인이 사회봉사명령이라는 국가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그동안 누누이 약속해온 대로 진정한 속죄와 봉사의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공익사업에 거액을 기부하고, 국민들을 상대로 자기반성의 강연과 기고를 행한다면, 국민들로부터 더욱 큰 공감과 박수를 받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한 공감과 박수를 이끌어내는 것은 헌법과 법률의 원칙을 엄정하게 준수하면서 국가형벌권을 실현하고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여야 하는 판사, 검사 등 형사사법기관의 임무가 아니라, 성숙된 시민사회와 양심적인 기업가들이 자율적으로 맡아야 할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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