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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타산지석
분류 공판송무 > 공판
중요키워드 석궁테러
등록 일자 2007년 01월 26일
출처 검찰청

본문내용

요즘, 판사에 대한 석궁테러를 한 전직 교수에 대해 말들이 많습니다. 
재판결과에 불만이 있다고 판사를 테러하는 나라가 어떻게 법치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느냐고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사이버 상에는 사법부의 오만과 독선을 원색적으로 비판하는 글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도배질 되고 있어 법원에서 깜짝 놀라고 있는 모양입니다.

법원에서는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로서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국민들이 이럴 수 있느냐면서 사법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자 침해라고 논평하는 등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저도 이번 사태에 충격 받았습니다. 검사나 판사는 참으로 겁나는 세상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전에는 검찰청이나 법원 앞에서 1인 시위하는 사람을 우습게 알았더니 그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동안 재판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도, 신성한 사법권 운운하면서 안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아마 공판해 본 검사님들은 알 겁니다. 재판장이 합의가 안 되었다고 판결 이유 등을 설명하면, 방청석에서 바로‘합의했는데요’라고 말대꾸하는 것은 보통 있는 일이고요, 전에도 한번 글을 쓴 적이 있지만, 판결 선고를 듣고 그 결과에 불만이라고 씩씩거리면서‘재판이 아니라 개판’이라고 험한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전 우연히 제 사법시험 동기로, 검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변호사를 하고 있는 최모 변호사의 블로그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에는 상당히 유익한 글들이 많아서 간혹 들어가는데, 그곳에 석궁테러 사건의 판결문이 게재되어 있더군요.
그 사건의 판결문 결론 부분을 그대로 전재해 보겠습니다.

기초사실에서 본 사실들에 의하면, 원고의 위 대학별 입학고사 문제의 오류를 지적한 것이 원고에 대한 징계처분, 부교수 승진 탈락 및 이사건 재임용거부결정의 한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중략)
따라서 원고가 피고의 정관에서 정한 위 학교 교수로서의 재임용 기준 중,‘전(前) 임용기간중의 연구실적 및 전문영역의 학회활동’이라는 기준에는 적합한 요건을 갖추고 있으나,‘학생의 교수, 연구 및 생활지도에 대한 능력과 실적, 교육관계법령의 준수 및 기타 교원으로서의 품위유지’라는 기준에는 현저하게 미달된다 할 것이어서, 이들을 종합하면 원고가 위 재임용기준에 적합하지 아니한다고 판단되어, 피고가 원고에 대하여 한 이사건 재임용거부결정은 피고의 재량권 범위 내에서 이루어 진 것으로서 적법 유효하므로(이는 원고가 그에 대한 평정권자인 위 이과대학장으로부터 학문연구능력 및 실적영역에서 A등급 평정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 일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무효라는 원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이와 같이 이 사건 재임용 거부결정이 유효한 이상 그것이 무효임을 전제로 원고가 위 학교 교수지위에 있다는 원고의 주장은 더 이상 살펴 볼 필요 없이 이유 없다.

확실하고, 명쾌한 판결 같습니다.
대학시험문제 출제의 오류가 징계처분, 부교수 승진탈락 및 재임용 거부의 한 원인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는 점을 봐도 제대로 짚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시중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소위 튀는 판사인 이사건의 주심판사인 이 모 판사는 판결문이 송달됐는지 확인을 했더니 판결문이 송달되지 않았더라고 하면서, 판결문을 읽어보고 재판부의 뜻을 조금이라도 알려고 했으면 이런 불행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취지의 글을 법원내부통신망에 올린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판결문에 자신 있다는 뜻이겠지요.
양당사자가 제기하는 주장과 제출된 증거에 의해 판단했을테니 잘했겠지요.
그런데 제가 이 판결문을 읽고 제일 먼저 가슴이 뜨끔했던 것은 판결문중의‘현저하게 라는 표현과 이과대학장이 A등급으로 평정해도 결론에 소장 없다는 표현 그리고 마지막에 더 이상 살펴 볼 필요 없이 이유 없다’는 표현이었습니다.

저도 불기소결정문에 그런 표현을 많이 써왔기 때문에 그 표현이 가슴에 반향을 일으켰던 것이겠지요.
그런데 이 판결문을 읽다보니, 이런 표현은 쓰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사건의 당사자인 김 모 교수는 학교에서 해직된 이후, 해외에서 무보수 연구교수로 10년간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그 뿐 아니라 귀국해서는 교수 복직을 위한 고소, 고발 등 형사투쟁과 함께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등 싸워왔고, 1인 시위에도 몰두 해 왔던 사람이었다고 신문에서 보도하고 있데요.
그런 사람이 기댈 곳은, 인권보호의 최후의 보루인 법원뿐이었기에 교수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하여 그동안의 설움, 고통을, 증거자료와 각종탄원서의 수집과 제출로 풀어왔을 겁니다.
그런 사람에게 판결문에서‘기준에 현저하게 미달한다’‘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론에는 소장 없다’‘더 이상 살펴볼 필요 없이 이유 없다’는 표현으로 내쳐도 되는 걸까요?

아마 부지불식간에 정형화 된 표현이기에 썼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표현을 무심코 쓴다는 것 자체가 판사 뿐 아니라 검사가 고압적이고, 오만하고 냉정하고, 정나미 뚝뚝 떨어지게 살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제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이 판결문을 예로 들어 우리 자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입니다.
분쟁의 와중에 휩쓸려 살고 있는 우리들도 정말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은 생각 없이 그런 말을 해서 당사자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일은 없었는지 반성해 보자는 겁니다.
그리고 타산지석으로 삼자는 겁니다.

무엇보다 먼저, 결정문을 읽는 사람을 입장에 서서 그들의 분노를 자극하는 표현, 감정이 개입된 표현, 정성 없는 표현은 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고소인이 고소를 했는데 검사가 불기소 결정을 했다하면, 그 고소인은 검사의 불기소결정문을 읽고 또 읽고, 연필로 밑줄을 긋고, 형광펜으로 좍좍 그어가면서 읽습니다.
또한 그들은 표현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불기소장에 피의자의 변명이 먼저 들어가 있고, 장황하게 피의자의 변명이 기재되어 있으면 왜 피의자 변명만 들어서 불기소결정을 했냐고 앙앙불락이지요.
또 왜 피의자 말은 믿고, 자신의 말은 취신키 어렵다고 하느냐, 믿기 어렵다고 하느냐 따집니다.

그런 것을 알기에 옛날에 어떤 선배는 범죄혐의 없음에 돌아간다. 또는 귀착한다. 라는 표현을 고집했었습니다.
즉 범죄사실을 적시한 다음, 고소인은 이러이러한 주장을 하는데, 피의자는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제출된 증거를 살펴보면 이러이러한 사실이 인정되어 피의자의 주장과 부합하고 따라서 고소인의 주장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범죄혐의 없음에 돌아간다는 식으로 결정문을 썼었지요.

그렇게 사소한 것까지 신경 써야 되냐고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결정문을 써서 억울하다고 고소한 고소인을 달래고 배려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짐작되어, 역시 늙은 생강이 맵다는 옛말을 되새김질 하게 됩니다.
즉 쓰는 방식도 항상 신경을 써서 해야겠습니다.

다음으로, 제가 전에 경희대 특강을 가서 정진섭 선배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세월은 가네 -경희대 캠퍼스에서- 라는 글로 써 검사게시판에 올린 사실이 있습니다.
그 분께서 대학은 연구하는 기능과 교육하는 기능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분의 설명을 기초로 이 사건을 간명하게 정리한다면, 연구 능력을 갖추기는 했지만 교육자적인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교수직을 해직하자, 다투고 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두 가지 기능을 모두 갖추고 있는 대학에서, 두 가지 기능을 원만히 수행하는 사람만이 교수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너무 피상적인 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법대로, 또는 법의 이름으로 라는 생각도 중요한 것이겠지만, 사건 속에 깊이 숨겨진 원인을 찾아내 치유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판사나 검사 모두 마찬가지일 겁니다.

석궁테러사건이 발생했을 무렵에 대전고법의 박 모 부장판사의 따뜻하고 정이 흘러넘치는 판결에 대해 각종 언론에서 칭송하는 것은 다 까닭이 있어서겠지요.
                      - 2007. 1. 23. 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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